지난 4월 29일 국회의원 재.보궐선거가 치러졌다. 그 과정에서 주요 정당의 당 공천 문제가 예사롭지 않다. 결국, 공천 심사에서 탈락한 일부 후보자들이 무소속으로 출마해 당선됐다. 이는 곧 계파 간 갈등으로 이어져 심한 내홍을 겪고 있다. 결코 바람직한 방향은 아닌 듯하다. 이러한 시점에서 계파 간 갈등을 극복하고, 당의 화합과 단결을 위해 '복수공천제' 도입을 제안하고자 한다.
▲헌법과 법률상 정당과 국회의원의 책무 규정 및 무소신 정치 현재 헌법, 정당법, 국회법을 살펴보면 헌법 제8조에서는 '정당의 설립은 자유이며, 복수정당제는 보장된다'라고 규정돼 있고, 헌법 제46조 제2항에서는 '국회의원은 국가 이익을 우선해 양심에 따라 직무를 행한다'라고 규정돼 있다. 또, 정당법 제2조에서는 '정당이란 국민의 이익을 위하여 책임 있는 정치적 주장이나 정책을 추진하고, 공직선거의 후보자를 추천 또는 지지함으로써 국민의 정치적 의사 형성에 참여함을 목적으로 하는 국민의 자발적 조직을 말한다'라고 규정돼 있다. 그리고 국회법 제114조의 2에서는 ‘의원은 국민의 대표자로서 소속정당의 의사에 기속되지 아니하고 양심에 따라 투표한다.’로 규정되어 있다. 그런데, 과연 정당 소속 국회의원들은 정당과 국민의 이익이 상충할 때 누구의 손을 들어줄 것인지 자못 궁금하다. 최근 국민일보의 '18대 의원들의 투표 집중 분석', '법안 내용도 모른 채 당 시키는 대로 쿡', '투표자 중 96% 찬성 버튼', '초선일수록 당론에 순응', '한국의 구조적 문제 지적', '592개 처리 법률안 분석' 등의 보도가 이채롭다. 정당의 당론이 있다고 하더라도 개개 의원들의 의사가 존중되어야 하며, 특히 본회의에서 각종 법률안과 예산안을 표결 처리할 때 소신투표가 보장되어야 한다. 소신 없는 투표는 그 지역주민들과 국민들을 무시하는 행위로 비쳐진다.
▲'정당공천제도'의 채택 및 폐해, 필요성 정당제도의 폐단이 어디서부터 시작되었을까? 아마도 정당공천이 의무화되던 제3공화국부터 시작된 것이 아닐까 여겨진다. 즉, 국회의원 입후보 자격에 정당공천을 의무화해 무소속 출마를 원천봉쇄한 시점으로 보여진다. 그러면 공천이라도 공정하고 투명하게 민주적으로 이뤄져야 하는데, 당시 상황으로는 당 총재 의중이 거의 절대적이라 그다지 엄정하게 공천되던 시절은 아닌 듯하다. 그렇게 당의 보은으로 공천을 받아 당선되면 그 이후 과연 정당의 눈치를 보지 않고 소신껏 국가와 국민의 이익을 위해 헌신할 수 있을까. 진정 소신과 용기의 정치를 펼 수 있을까. 어느덧 목적과 수단이 전도되는 현상을 목격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면 이러한 폐단을 시정하고, 보다 국민의 이익을 대변하며 국민의 선택을 확대해 줄 수 있는 방안은 없는 것일까? 아니다. 완전한 해결책은 아닐지라도 적어도 지금의 계파 갈등의 문제와 국민의 선택권을 확대해 줄 수 있는 제도는 '복수공천제'로 보여진다. 현재 공직선거법상 국회의원을 비롯한 각종 선거에서 자치구, 시.군의회의 선거를 제외하고는 정당은 선거구마다 공천 심사나 당내 경선을 통해 1인만을 후보자로 선정하고 있다. 그렇게 하는 것이 소선거구 하에서는 자당 후보의 당선 가능성이 높고, 또한 중앙당의 영향력을 계속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이렇게 공천의 영향력이 선거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는 상황 하에서는 당선 이후에도 후보자는 정당의 방침이나 당론에 거의 절대적 가치를 두고 의정활동을 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 싶다.
▲국민의 후보자 인물 선택권 확대 및 계파 간 갈등 치유 적합 문제는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중앙당 입장에서는 후보자를 검증하고, 당에 부합한 인물 1명만을 선택해 공천하는 것이 당선 가능성이 가장 높을 지 몰라도 국민들 입장에서는 후보자를 선택할 수 있는 선택의 폭이 지나치게 좁혀져 있다는 것이다. 즉, 정당에서는 계파 간 갈등 치유 및 후보자 간 치열한 공천 경쟁을 고려해 1구1인 선거제인 소선거구제 하에서도 2명 이상씩 공천을 한다면 국민 입장에서는 그만큼 선택의 폭이 넓어진다는 것이다. 정당 뿐 아니라, 인물도 비교 선택할 수 있는 선택권이 확장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더욱이, 최근 주요 정당은 선거 때마다 계파 간 갈등으로 공천의 후유증을 심하게 앓고 있으며, 공천 탈락자는 이에 불복해 탈당한 후 무소속으로 출마해 당선되고, 그 이후에는 다시 원래의 소속 당으로 입당하는 기이한 현상이 자주 벌어지곤 한다. 이것은 적어도 인물 본위로 선택한 국민의 뜻을 역행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앞으로 이러한 모습은 사라져야 할 요소라 생각된다.
▲복수공천제의 선례 및 정당 통합에 따른 위기 극복 과연 복수공천의 선례가 없을까? 아니다. 이전에도 운영했던 제도이다. 이를 간단히 살펴보면, 한국 정당정치사에서 복수공천은 초대 총선부터 제5대 총선에 이르기까지 시행됐던 제도이다. 유신 시절인 제10대 총선과 5공화국 시절인 12대 총선에서도 각 신민당에서 4곳과 신한민주당(약칭 신민당)에서 2곳을 복수공천한 선례가 있다. 물론, 초창기에는 공천의 특별한 혜택이 없어 후보자들이 상당수 무소속으로 출마하던 시절이라 복수공천의 큰 의미는 없었다. 그러나 박정희 정권시절인 제6대 선거에서부터는 한동안 모든 후보자들의 정당공천 의무화로 공천의 필요성이 대두되었고, 그 이후 10대와 12대 총선에서 신민당과 신한민주당에서 계파 간 갈등 등을 이유로 복수공천을 단행해 상당한 효과를 본 제도로 여겨진다.
▲자치구, 시.군의회 선거의 복수공천 운용 및 공직선거법 개정 필요 게다가, 현재의 실정법상 우리나라도 비록 자치구, 시.군의회의 선거라도 이 제도의 필요성에 따라 공직선거법 제26조 제2항에 의거 지역구.자치구.시.군 의원 정수는 2인 이상 4인 이하로 규정해 중선거구제로 복수공천제를 운용하고 있는데, 이것이 바로 복수공천제의 도입 필요성을 간접적으로 공감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또한, 한국 정당정치사의 위기와 통합의 예처럼 당이 위기에 처하면 이를 극복하기 위해 당을 통합하고, 그 효과로 선거에서 승리했다가 다시 계파 간 갈등으로 분당하는 선례가 반복적으로 행해지는 상황 하에서는 복수공천제의 도입이 절실히 필요하다 할 것이다. 물론, 복수공천제를 도입하려면 공직선거법 제47조(정당의 후보자 추천)의 개정을 통해 1구1인제(소선거구)에서 각 정당은 후보자 공천 시 2명 이상씩 의무적으로 공천하도록 해야 하며, 필자는 대통령 선거를 제외한 모든 선거에서 이 제도의 도입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소신정치, 갈등 치유 및 화합과 단결, 양당제 확립, 국가이익 우선, 국민의 사랑 이 제도가 도입되더라도 중앙당에서 우려하는 당 영향력의 변화는 매우 미미할 것으로 보인다. 그것은 여전히 2명 이상의 후보자 공천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할 수 있는 현 시스템이라 별문제가 없어 보인다. 다만, 정당의 후보자가 2인 이상이 되면 인물보다 주로 정당만 보고 찍는 폐단을 방지할 수가 있고, 국민의 인물 선택의 폭이 넓어져 당선자 스스로 국민의 입장을 대변해 소신정치를 기대할 수 있다. 즉, 현 제도와 같이 당선에 있어 공천이 거의 절대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것보다는 당과 인물을 고루 선택할 수 있는 국민의 선택권을 강화하는 제도로의 모색이 필요할 때가 되었다고 본다. 또한, 여러 낙선자들을 득표 순으로 명부를 작성해 결원시 선거를 치르지 않고 순서대로 그 직을 승계할 수 있도록 하면 고액의 선거비용, 사표, 투표율 저하 등의 문제도 더불어 해결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복수공천제 도입에 따른 효과는 현재 각 정당이 직면하고 있는 계파 간 갈등을 치유하고, 군소정당 난립에 따른 정치 혼란을 억제하는 양당제 확립, 통합에 따른 시너지 효과, 민생정치 전념 등 그 파급 효과가 상당할 것으로 기대된다. 이렇게 될 때, 비로소 국회의원은 국가와 국민을 위한 실질적인 정책을 제시하며 의회 기능이 정상화돼 국민의 사랑을 받고, 정당과 국민을 두루 존중할 수 있는 균형감각을 지닌 소신정치를 펴나갈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복수공천제의 부활을 통해 당의 화합과 단결을 도모하고 양당제를 확립하며, 국민의 후보자 선택권을 확장하고 정당의 이익 추구에 앞서 국가이익을 우선하며, 선한 양심에 따라 직무가 집행될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김진목 정치학 박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