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미 씨는 이불을 뒤집어쓰고 TV를 보고 있다가 남수 씨를 보고 찌푸린 표정을 짓는다.
“재미있었어?”
“무슨 재미. 하나도 재미없었어. 날씨가 안 좋았어. 바람이 너무 강했거든.”
“당신은 혼자 재미 다 보고 왔으면서 꼭 재미없었다고 말하더라. 치사하게. 얼굴에는 너무 재미있었습니다라고 써 있구만….”
뾰로통해서 방으로 들어가버린 영미 씨의 뒷모습과 집안 공기에서 심상치 않은 사건이 터진 것을 직감한 남수 씨는 당황스러웠다. 그제야 아픈 아내를 두고 낚시를 하러 갔다 온 것이 실수라는 걸 깨달았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 한편으로는 갔다 오라고 허락한 사람이 치사하고 깔끔하지 못하게 이제 와서 구시렁거려 사람 기분 나쁘게 만드는 게 화가 난다.
영미 씨는 남수 씨가 혼자라도 낚시를 가기를 바란 걸까? 글쎄다. 대부분의 경우 남자들이 여자들의 이런 말을 오해하거나 자기 좋은 식으로 해석해서 문제가 생긴다. 남수 씨는 영미 씨의 마음을 제대로 읽지 못한 것이다. 여자는 아플 때 배우자나 사랑하는 이가 같이 있어 주기를 바란다. 특별히 해주는 것이 없어도 좋다. 굳이 죽을 끓여주고, 옆에 꼭 붙어 앉아서 물수건을 갈아주며 시중을 들기를 원하는 것이 아니다. 그냥 같이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든든하고, 그가 자신을 소중히 여긴다고 생각한다. 같이 있고픈 욕망과 비례해 내가 아픈 것 때문에 사랑하는 사람에게 부담이 되고 싶지 않다는 생각도 강해진다. 그래서 속으로는 함께 있어 주기를 바라지만 겉으로는 “난 괜찮으니까 혼자 갔다 와”라는 말을 하게 된다. 문제는 대부분의 남자들이 합리적으로 사고한다는 미명 하에 “넌 어차피 못 가니까, 나라도 갔다 올게. 그리고 네가 가라고 허락한 것이잖아”라고 아내의 말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여기서 첫 번째 어긋남이 벌어진다. 아내는 남편을 테스트해본 것이다. 그런데 그 한 번에 바로 낚여버린 채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낚시도구를 챙기는 남편을 보면 “역시, 세상에 믿을 놈 없어”라는 실망이 생긴다. 그런데 남자는 허락이 떨어지는 순간 아내의 이런 미묘한 표정 변화는 보지 못한다. 이미 마음은 저 멀리 서해안에 가서 친구들과 보낼 신나는 주말을 꿈꾼다. 그러니 “몸조심하고, 일찍 올게”라는 말이 아내에게는 인사치레로만 들리는 것이 당연하다.
혼자 끙끙 앓는 주말을 보낸 후 남편이 돌아온다. 나름대로 반성을 하고 조금 일찍 낚싯대를 접고 돌아오면 잃은 점수 반은 만회하련만, 친구들에게 약한 모습을 보이는 것이 죽기보다 싫은 관계로 그러지 못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그래서 또 점수를 잃었는데 이번에는 두 번째 시험이 기다리고 있다.
“재미있었어?”
남자들은 참 곤혹스럽다. 이 질문에 어떻게 대답을 해야 할까? 수능시험보다 어려운 문제다. 곧이곧대로 너무 재미있었다고 대답하면 아내가 얄미워할 것이 뻔해 보인다. 그렇지 않아도 표정이 심상치 않은데 재미있었다고 콧노래를 흥얼거렸다가는 두고두고 욕을 먹을 앞날이 눈앞에 파노라마로 펼쳐진다. 그러니 할 수 없이 택하는 답이 “재미없었어”라고 괜히 투덜거리면서 안 가고 집에 있을 걸 그랬다는 둥 변명을 늘어놓는 것이다. 그런 말을 듣고 아내 기분이 좀 풀어지기를 기대하면서. 그러나 실상은 정반대다. 왜냐하면 아내가 알고 싶은 것은 재미있다, 없다는 문제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문제 출제자의 의도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것이다. 이 문제는 단답식이 아니라 주관식 리포트를 내라는 것이다. 그녀들은 그가 거기서 무엇을 했고 어떤 일이 있었는지를 알고 싶다. 그 곳에 가지 못했지만 주말 동안 남편이 했던 경험을 공유하고 싶은 것이다. 바다는 어땠고, 남편 친구들의 근황은 어떤지 등등이 궁금한 것이다. 그런데 남자들은 단답식에 익숙하다. 그래서 일단 재미 ‘있다’와 ‘없다’ 사이에서 갈등을 한다. 그것이 근본적인 차이다. 남자들은 어느 방향으로 얘기를 풀어갈지를 결정한 후 얘기를 만들어간다. 그래서 어찌 대답해야 할지 곤혹스러운 딜레마에 빠지고, 결국 ‘틀렸습니다 땡!’이라는 부저가 아내의 눈앞에 켜지는 걸 보게 된다.
남자와 여자가 지닌 속마음의 차이 때문에 이런 갈등은 비일비재로 벌어진다. 그러므로 앞으로 남편들은 “나는 괜찮으니까 당신이라도 갔다 와”라는 말에는 사실 “날 놔두고 어딜 혼자 가? 가기만 해봐, 알아서 해”라는 메시지가 담겨 있다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 또 “재미있었냐”는 질문은 있다 없다 중 하나를 고르는 단답식 OX 문제가 아니라는 것, 그보다는 무슨 일이 있었는지 조금은 시시콜콜하게 얘기를 해주고 그 내용 안에서 재미가 느껴지도록 유도하는 감상문을 써야 한다는 것, 그리고 끝은 어릴 때 그림일기처럼 “참 재미있었습니다”와 같은 어구로 끝날 이유가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 길만이 아내의 실망을 회복하고, 오랜만에 혼자 보낸 주말의 즐거움을 훼손하지 않는 방법이다.
출처 : CJ-생활속의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