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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만나고 싶었습니다.

갓생지인 2007. 11. 21. 19:52




1997년 어느 시골의 작은 방. 외부와 단절된 그곳에서 한 사람이 여름 내내 조선시대 당쟁사와 씨름하고 있다. 대학원 박사과정에서 한국사를 전공하고 있는 그는 방학을 이용해 마음먹은 이 원고를 마치려는 것이다. 완성한 원고의 운명이 어떻게 될지 정해지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다. 먼저 학교 도서관에서 한달치 신문을 찾아 책 광고에 나와 있는 출판사 리스트를 뽑고는, 30여 군데 출판사에 무작정 집필한 원고의 목차를 팩스로 보냈다. “출판을 위해 여러 출판사에 연락을 취하고 있으니, 제일 먼저 연락이 오는 곳과 계약하겠습니다”라는 내용의 메모와 함께. 며칠 후 그는 ‘석필’이라는 출판사에서 연락을 받는다. 그 후 10여 군데의 출판사에서 받았던 러브콜을 말끔하게 거절했음은 물론이다. 현재, ‘역사평론가’라는 직함을 달고 각종 저서와 칼럼, 강연 등으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이덕일의 공식적인 첫 저서 『당쟁으로 쓰는 조선역사』(1997)는 이렇게 출판되었다.



역사로 대중들과 소통하기를 10여 년, ‘이덕일’이라는 낯선 이름은 어느새 개인 블로그까지 속속들이 파고드는 친숙한 역사가의 이름이 되었다. 학계가 아닌, 사람들을 향해 역사를 이야기하는 그에게 대중의 한 사람으로서 거꾸로 다가가 인사를 건네고 싶었다.
마포의 한 오피스텔. 집필실로도 사용하고 있는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의 사무실에서 역사평론가 이덕일 씨를 만난 건 그 때문이었다. 시선을 가로지르는 턱선과 또렷한 눈빛은 책이나 신문 칼럼에서 본 사진과 꼭 같았지만, 역사에 관한 중요한 논리를 설파할 때도 놓치지 않는 유머감각은 인기 많은 학창시절의 역사 선생님을 연상케 했다.
가장 궁금했던 것은 ‘계기’였다. 정규 교육과정에서 박사학위를 받고도 활동의 범위를 학계로 한정 짓지 않은 점. 그의 행보가 이미 존재하는 길을 밟아나간 것이 아닌, 길을 만들며 걸어간 것이기에 더욱 그랬다. “특정당파와 특정사관이 뿌리 깊게 존재하는 학계에서,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다면 비주류가 됩니다. 그때 대중과 소통해 보자는 생각이 들더군요.” 단순한 오기는 아니었다. “피터 드러커의 한 저서에서 미래사회에는 대중을 움직일 수 있는 전문가가 중심이 된다고 했습니다. 그게 오히려 자극이 됐죠.”
이렇게 시작된 이덕일의 10년은 괄목할 만하다. 오랜 시간 동안 연구했던 것들이 책이라는 결과물로 나오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사도세자의 고백』 『송시열과 그들의 나라』 등 초기저서는 조선시대 전반에 걸쳐 지배세력으로 군림한 노론 세력에 관해 새로운 해석을 보였고, 『누가 왕을 죽였는가』에서

개정된 『조선왕 독살사건』은 역사를 하나의 사건으로 접근해 역사적 사실을 보다 흥미롭고 다채롭게 사고할 수 있도록 제시한다. 그런가 하면 『정약용과 그의 형제들』에서는 역사적으로 과소평가된 인물을 재조명하고, 『고조선은 대륙의 지배자였다』와 전작 『오국사기』에 드라마타이즈 기법을 동원해 다시 출간한 『그 위대한 전쟁』은 한반도의 역사를 대륙성과 해양성의 역사로 바라보며 한국 고대사의 영역을 확장시켰다.



그의 저서들은 이렇듯 하나같이 역사교과서에서 보았던 인물들과 사건에 대해 새로운 관점을 포함하고 있다. 막힘 없이 읽히는 그의 글을 따라가다 보면, 학교에서 배웠던 것들과 상충되는 내용에 충격을 받기도 한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특정 사건이나 인물에 대해 다양한 관점으로 바라보게 되고, 그때 비로소 역사가 암기의 대상이 아닌 생각과 사고의 대상이라는 당연한 사실을 깨닫게 된다. ‘역사는 승리자의 기록’이라는 말


도 그제서야 무릎을 치며 이해하게 되는 것이다.
심지어 이럴 때도 있다. 책을 읽다가 이야기처럼 쉽게 읽히는 그의 문체와 필력에 설득당해 논리력이 무장해제 되고, 극적인 감정이입이 되는 경우. “객관적으로 바라보자는 거예요. 사실상 저의 견해는 주류학계에 대항해서 벌이는 100 대 1의 싸움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렇다면 그의 필력은 초·중·고등학교를 통틀어 12년 동안 배운 역사를 다시 생각해보도록 제안하는 훌륭한 무기다. 물론 형식보다는 내용이 중요하다. 출판계에서 명실상부한 인문학 베스트셀러 작가인 그는 대중들에게 관심을 받는 이유로 책이 담아내는 내용의 방향성을 꼽는다. “무조건 쉽게 쓰는 게 역사
의 대중화는 아닙니다. 뚜렷한 방향, 즉 사관과 전문적 지식이 기반이 되어야 합니다.”
식민사관과 반도사관 외의 다른 역사적 관점에 대한 대중들의 막연한 갈증이 역사평론가 이덕일의 논리적 방향성과 맞물려 계속되는 역사학의 수요를 생산해내는 것이다. 현재의 정치나 사회 문제를 과거의 역사적 인물이나 사건을 통해 바라보고 발언하는 신문이나 잡지의 칼럼도 이러한 방향성의 일환이다. 교과서에서 언급한 대로 보다 나은 현재와 미래를 위해 과거를 알고 이해하는 것이 역사학습의 목적이라면, 그의 글들은 여기에 딱 부합되는 셈이다.



어린 시절 아버지에게 받았던 ‘밥상머리 교육’과 세 들어 살던 주인집에서 빌려 보던 함석헌 선생의 책들을 읽고 역사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는 그는, 역사학이란 망원경과 현미경이 필요한 학문이라고 말한다. 그의 저서가 다양한 시대를 아우를 수 있는 것도 그가 가진 똑똑한 망원경과 현미경 때문이다. 일반론보다는 특정 사건이나 특정 인물을 통해 바라볼 때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다는 관점도 마찬가지다. 미래지향적인 시대정신을 추구하면서 홀로 외로운 길을 걸었던 인물들에게 애정이 생긴다는 그는, 그가 오랜 시간 연구해왔고 책으로도 펴낸 바 있는 단군과 사도세자에 관해 재미있는 이야기를 꺼냈다. “큰 교통사고가 세 번 있었어요. 그중 두 번은 차를 폐차시킬 정도였죠. 근데 그 분들이 도와주셨는지 멀쩡했어요. 교통사고만 1년에 3,000~4,000건을 상대한다는 경찰관도 놀랄 정도였죠. 무속인들 이야기로는 령의 힘이 가장 강한 분이 단군이시고, 그 다음이 사도세자라고 하더군요.”
현재 차기 저서로 집필 중인 유성룡과 윤휴, 이익, 정조 임금 등은 앞으로 그가 더 관심을 가지고 연구할 인물들이다. 이 인물들은 또 어떤 흥미로운 역사적 사건과 함께 깊은 잠에서 깨어나게 될까.

다음 책에 대한 설레는 기대감으로 이야기를 마쳤을 때, 처음 인사할 때 받았던 명함의 그림이 눈에 들어온다. 달리는 말 위에 앉아서 몸을 뒤로 돌려 두 손으로 활을 쏘는 고대의 병사. “이 그림에서는 말 옆에 발을 끼워 넣을 수 있는 등자가 가장 중요하죠. 당시 어느 나라에도 없었던 겁니다. 이게 없었다면 뒤로 편하게 몸을 돌릴 수도, 자유롭게 두 손을 사용할 수도 없을 테니까요.” 그러고 보니 학교에서 배운 역사를 반대로도 생각해보고 자유롭게 사고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는 역사평론가 이덕일이 바로 우리 시대의 ‘등자’가 아닌가 싶었다.
출처 : 웹인포 플래닛
글쓴이 : 웹인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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